Quantcast
Channel: Bloter.net »»애덤스미스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2

홉스에서 토크빌까지, 인터넷 자율규제 마름질

0
0

정치철학을 배워보면 자연 상태가 어떠냐에 따라서 정치관이 바뀐다는 걸 알게 된다. 예를 들어 ‘리바이어던’을 쓴 토마스 홉스는 자연 상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라고 봤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정도가 아니라 목이 날아가는 세상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홉스의 대안은 개인이 자기 권리를 양도해 인공적인 권력체, 주권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이 주권국가가 제정한 법에 따라 개인은 지배를 받게 되지만 적어도 생명은 유지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홉스의 정치철학이 공포의 정치철학이라면, 로크는 좀 더 평화로운 자연 상태를 가정한다. 개인간에 다툼이 있긴 하지만 그건 홉스가 생각한 것처럼 생명이 위태한 수준은 아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주권국가의 역할은 사인간에 발생하는 이런 갈등을 조정하는 수준으로 축소되며, 국가는 시민의 동의 없이는 공권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럴 경우 해당 권력은 정당성을 상실한다.

토마스 홉스와 존 로크는 수백년전 영국 사람들이지만 오늘날 한국 인터넷 정책을 생각할 때 이들이 제공한 기본적인 통찰은 유용하다. 인터넷 정책이란 것도 이렇게 국가 권력이 개입하지 않았을 때 자연 상태에 대해서 생각하는 방향에 따라 필요한 수준과 범위의 개입이 달라진다. 제한적 본인확인제(일명 ‘인터넷 실명제’)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이 정책이 보는 인터넷 자연 상태는 이렇다. 인터넷은 그냥 내버려 두면 사람들이 자기 정체가 들통나지 않을 거란 계산하에 무책임한 발행을 일삼는 공간이다. 흔히 이런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쓰는 비유는 인터넷은 마치 마스크와 같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마스크 뒤에 숨어서 자기가 평소에는 하지 못할 행동들을 맘껏 하고 있다. 무정부상태는 혼란 그 자체다. 이 혼란에는 통제가 필요하다. 이들은 사이버 홉스주의자들이다.

반대로 이러한 인터넷에 대한 표현 규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인터넷 자연 상태의 위험성을 적어도 사이버 홉스주의자들보다는 낮게 본다. 이 진영에 속한 사람들 중에는 인터넷에는 아무 규제도 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이버 무정부주의자들도 있다. 그러나 대개는 인터넷에 문제가 있긴 해도 그건 개인들이 알아서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혹은 그렇게 개인들끼리 잘 해결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건 행정기관이 나설 일이 아니라 사법기관에서 처리하면 될 일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자연상태에 대한 상대적 긍정, 공권력에 대한 상대적 견제라는 측면에서 이들은 사이버 로크주의자들이다.

대공황 때 시장 실패가 케인즈주의를 불렀고 이후 복지국가에 대한 비판이 신자유주의를 초래한 것처럼, 하나의 정책 실패는 또 하나의 정책 실험을 야기한다. 지난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한국 인터넷 규제는 사이버 홉스주의자들의 세상이었다. 앞서 소개한 실명제를 비롯한 공인인증 의무제, 삼중 게임 셧다운제 등을 비롯한 각종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규제는 대한민국을 민주주의 국가 중 가장 심한 온라인 표현 규제가 있는 나라, 글로벌 ICT 시장의 갈라파고스로 만들었다. 인터넷 자연 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 그래서 국가의 강력한 통제가 필요한 공간으로 보고 만든 정책의 결과물이다.

이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지난 이명박 정부 때 높았고 지금도 낮아지지 않았다. 이런 사이버 홉스주의자들의 실패는 이제 사이버 로크주의자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사이버 로크주의자들은 인터넷을 아는 사람들이 인터넷 정책을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말은 인터넷 정책을 하는 사람들이 누구도 소유하지 않고 통제하지 않는 인터넷이 어떻게 자기 조직적으로 지금까지 성장해 왔는지, 글로벌 경제의 기업가 정신과 시민운동가의 원동력이었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면서 인터넷 정책을 하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뜻이다. 즉, 인터넷 자연상태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가 아니라 개인이 자발적으로 서로간에 관계를 맺고 거래를 하는 공간이므로 국가는 시민의, 이용자의 동의하에서 필요가 요청된 경우에만 일부 개입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이버 로크주의자들의 주장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인터넷 자율규제론’이다.

자율규제란 게 도대체 무엇인가. 인터넷 자정작용이란 말과 함께 사실 이 말은 내게 그렇게 와닿지 않는 말이다. 과소비는 일상에서는 쓸 수 있지만 정책용어로는 쓸 수가 없다. 객관적으로 정의가 되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말은 남용되기 쉽고 남용된 언어도 폭력이다. 따라서 자율규제란 말도 이게 무엇이다라고 보여줄 수 없는 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한 정책상으로는 의미가 없다.

그런 관점에서 홉스와 로크를 떠나 이번에는 아담 스미스와 토크빌을 빌려 자율규제란 무엇인지 설명해보고자 한다.  ‘국부론’을 쓴 아담 스미스는 개인의 자기이익 추구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 정확히는 가격 기구에 따라서 효율적 자원 배분으로 나올 수 있다고 봤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쓴 토크빌은 국가 영역의 밖에서 개인이 자발적으로 만드는 결사체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본 자산이라고 주장했다. 한 명은 시장, 다른 한 명은 시민사회를 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개인이 만든 ‘자발적인 질서’가 국가가 만든 ‘강제적 질서’보다 일반적으로는 더 낫다고 본다. 정보가 한 곳에 몰려 있으면 중앙에서 통제하는 게 맞지만 정보가 산재되어 있으면 중앙에서 통제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개인의 자발적인 거래하기와 관계맺음이 훨씬 더 효율적인 대안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분산적 네트워크인 인터넷 역시 기본적으로 한 곳에 정보가 몰리지 못하게 만들기에, 인터넷에서 시장과 시민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도 강제적 질서보다 자발적 질서를 우선하는 것이 맞다. 이게 자율규제론의 핵심이다.

자율규제론의 그림을 그릴 때 핵심은 이런 ‘자발적인 질서’에 대한 이해와 지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말로는 자율규제론을 내세우면서 예를 들어 그 자율규제론의 정체가 공정거래법에 위반하지 않는 이용약관에 불과하다면 이는 국가 단위에서 하던 강제적 질서를 기업 단위에서 하는 강제적 질서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 기업뿐 아니라 시민단체, 이용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제도가 있고 그 제도를 통해서 어떻게 자율규제가 정의되고 시행될 수 있을지 논의돼야 한다.  이용자들이 매우 쉽게 인터넷 정책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바뀌고 있는 지를 알 수 있고 그에 대해 의사를 표명할 수 있는 공간이 제공돼야 한다. 이러한 실질적 제도와 기구의 틀이 존재할 때야 자율규제다운 자율규제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나아가 인터넷은 글로벌 네트워크이고 이에 기초한 ICT 시장도 글로벌 시장이다. NHN이 국내에서는 최대 인터넷 기업이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보면 구글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구글의 영향력은 안드로이드 OS를 통해서 인터넷 서비스뿐 아니라 단말기, 통신시장까지 닿아 있다. 또 다른 예로 소셜 네트워크로 들어가면 국내외적으로 페이스북의 영향력은 상당하다. 8억 가까운 이용자를 갖고 있다는 건 상당한 네트워크 효과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므로 큰 변수가 적용하지 않는 한 소셜 네트워크 시장에서 페이스북의 위치는 공고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자율규제가 국내에서 논의로만 국한된다면 실질적인 의미가 없다. 실제로 국내의 자율규제 해결 방식이 효과를 내려면 한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의 자율규제 해결 방식과도 호환돼야 하고, 적극적 인적 교류도 필요하며, 국내 정부나 사업자뿐 아니라 다른 정부와 사업자도 동의하고 참여할 수 있는 자율규제안이 나와야 한다.

그런 점에서 2013년 9월 한국뉴욕주립대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인터넷거버넌스포럼(IGF), 10월에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글로벌 인터넷거버넌스포럼, 같은 달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사이버스페이스총회, 2014년 부산에서 열리는 유엔 산하 ICT 정책 결정 기구인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전권대회 등의 국제 컨퍼런스는 한국이 자율규제와 관해 다른 국가의 목소리를 나누고 모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한국 인터넷 정책은 사이버 홉스주의에서 이제 사이버 로크주의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있다. 그러나 그건 원론적인 설명이고, 실제적인 변화는 각론에서 나온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은 이 경우에도 다르지 않다. 사이버 로크주의의 인터넷 정책 대안으로 나온 인터넷 자율규제가 과실을 맺기 위해서는 자율규제를 자율규제답게 실행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역량이 필요하다.

keyboard_work

http://www.flickr.com/photos/winstonavich/189032152. CC BY.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2

Latest Images

Trending Articles